14卷7冊 : 年譜, 四周雙邊半郭 21 x 17.5 cm, 有界, 10行18字 註雙行, 上下內向二葉花紋魚尾; 31 x 21 cm.
조선 후기의 문신 장석룡의 시문집이다. 아버지는 장학추(張學樞)이며, 어머니는선산 김씨로 김구운(金龜雲)의 딸이다. 1846(헌종 12)년 정시문과에 급제, 성균관전적․사헌부감찰을 지내고이듬해 사헌부지평과 사간원정언에 제수되었으며, 1848년 증광문과 회시의 시관(試官)을 거쳐 춘추관기사관이 되었다.해남현감으로 나갔다가 1849(철종 즉위)년사헌부장령에 제수되었으 나 나가지 않았고, 1854년 홍문관부수찬․지제교겸경연검토관 등의 직을 역임하고,1857년 홍문관교리 등을 거쳐 현풍현감에 제수되었다. 1864(고종 1)년 만언소(萬言疏)를올려 당시의 시폐(時弊)를 지적하였다. 이해에 대사간․예조참의․공조참의․경주부윤이 되었으나곧 귀향하 였으며, 77세에 다시 공조판서․이조참의, 80세인 1892년에 궁내부특진관을 지냈다. 시호는 문헌(文憲)이다.
이 문집은 1925년 간행된 것이다. 「만언소(萬言疏)」는 1864(고종 1)년에올린 것으로 지방 관리는 선택해서 임명해야 하고 재물을 아껴써야 하며, 전조(前朝)의 대신들을 중용해야 한다는 등의 내용이다. 「청선조문강공종사문묘소(請先朝文康公從祀文廟疏)」는 선조 장현광의 학문과 덕행은 문묘에 배향된 선현들과 비슷하고 나라에 비친 충성도 적지 않다고 지적하며 문묘(文廟)에 종사시켜줄 것을 청한 글이다. 「경연강의(經筵講義)」는경연에서 강의한 『중용』 과 『대학』의 내용을 알기 쉽게 기록하고 경연에서 있었던 중신들의 질의와 응답의 내용을 부기한 글이다. 이밖에도 임진왜란 때 선조를 호종하여 원종공신(元從功臣)이 된 박숭원 (朴崇元)의실기를 적은 「선무원종공신록권기(宣武原從功臣錄券記)」와 언행(言行)과 동정(動靜) 을 규정하여 잠언(箴言)으로삼은 「언행동정잠(言行動靜箴)」이 있다.